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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시픈 당신에게

늦깎이 한글학교 어르신들이 마음으로 쓴 시와 산문 89편

한빛비즈

집필서

판매중

  • 저자 : 강광자 외 86명
  • 출간 : 2016-10-10
  • 페이지 : 240 쪽
  • ISBN : 9791157841516
  • 물류코드 :3151
  • 초급 초중급 중급 중고급 고급
5점 (2명)
좋아요 : 44

한글학교 늦깎이 학생들의 웃음과 눈물

“지금이라도 배우니 행복합니다.”

 

『보고 시픈 당신에게』는 전국의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 89편을 엮은 책이다. 뒤늦게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과 안타까움, 가족에 대한 사랑, 고단하고 애틋했던 삶이 비뚤배뚤한 몇 줄 작품에 담겼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들을 위해 큰 글자로 다시 한 번 정리했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익숙한 일반인들이 비문해(非文解)자들의 절절한 사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간단한 메모나 은행 업무는 물론 아이들 공부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쌓인 안타까움과 설움이 가득하다. 글을 몰라 깜깜했던 평생의 이야기다. 오랜 세월 가슴에만 쌓아둔 심정들이 서툰 글씨로 쏟아져 내린다.

 

6연 전부터 몸이 아파요

백병원에서 파키스병이라고 함이다

땀이 비오더시 헐러내림니다

옷 두 벌 새 벌식 배림니다

온 몸이 떨림니다

그래서 글이

삐둘삐둘합니다

부끄럽지 안아요

잘몬한 기 업서요

_ 「글이 삐뚤삐뚤」 전문

 

열한 살 때

언니는 밤마다 실그머니 나갔다

알고 보니 마을 해관에 글 배우러 다니더라

나도 가고 시펐다

언니 나 좀 대꼬가라 하니

밤에는 늑대가 나온다며

언니는 나를 띠 놓고 갔다

언니 그때 나 좀 데꼬가지 하니

언니가 웃는다

지금이라도 글 배우니 질겁다

- 「언니 마음」 전문

 

 

내 이름조차 못 쓰고 살아온 세월

“살았으면 내가 편지라도 했잖아.”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현실이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가 불가능한 인구는 성인 100명 중 6명에 달한다(국가평생교육진흥원 조사, 2014 통계청 승인). 여러 사정으로 공부의 때를 놓쳤다. 부모의 잘못을 묻기도 어렵다.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60~70이 훌쩍 넘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면서도 ‘모두 내 탓’으로 돌리고 살았다.

“얼마나 더 산다고 이제 와 공부야?”라는 핀잔을 무릅쓰고 한글교실을 찾아 더듬더듬 한글을 배운다. 태어나 처음 내 이름 석 자를 쓰며 눈물짓는다. 남편에게 자식에게 편지를 쓴다. 생각처럼 손이 따라주질 않아 글자에는 떨림이 가득하다. 그래도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담았다. 그렇게 꼭꼭 눌러 썼는데 편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빨리 글을 알았더라면 당신 이해하고 좋은 안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었을 것을. 어느 책을 읽다 보니 ‘후회 없이 삶을 산 사람은 마지막 가는 길이 편안하다‘라는 글이 있더군요.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후회 없이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 곁으로 갈게요. 우리 만나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 많이 해요. 나 많이 변했어요. 그래도 꼭 알아봐주세요.

_ 산문 「보낼 수 없는 편지」 중에서

 

먼저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며느리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메모, 돈이 없어 자신을 판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그리워하는 모습은 이내 눈물을 자아낸다. 술에 절어 사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바탕 퍼붓다가도 콩물을 말아주고, 관광지에 실수로 두고 온 수박이 아까워 무릎을 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자꾸만 웃음이 난다.

 

나는 어제 친구하고

소백산 청록동굴 갔다

그런데 아리랑 호텔 앞에

수박을 놓고 갔다

아이고 아까워라

돈이 사만 원인데

_ 「관광을 갔다」 전문

 

자신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고백하는 일은 비문해자들에게 그야말로 기적이다. 손자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혼자 은행 업무를 보는 모든 순간이 기쁨이 된다. 답답함이 사라지고 고통이 희망으로 바뀐다. 평균 연령 69세, 아픈 무릎을 이끌고 한글교실로 나서는 분들의 목소리는 그래서 한결같다.

 

항상 배우지 못해서

배운 사이 부러웠어요

시집가서 신랑한테

행복도 받지도 못하고 살았어요

내가 배우지 못해서 한니 맺혔다

지금이라도 배우니 행복함니다

오늘은 공부방에서 공부하니 좋슴니다

_ 「하글 배우고 십다」 전문

 

 

배우면서 다시 보이는 세상

“공부는 힘이 나게 합니다”

 

문해교육은 단순한 ‘문자 습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비문해자들은 이제 모임을 만들고 사회 참여에 나선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문해교육은 한을 풀고 자존감을 높이는 과정의 첫 단계다. 반평생 모르고 살았던 ‘꿈’이라는 단어를 찾는 일이다.

 

저는 사상구 삽니다

제가요 공부로 하고 보니

부산 시내가 다 보이는 것 가타요

앉자도 공부 누도 공부

우리반 공부 다 잘해요

얼마나 좋은 줄 몰나요

이 글 쓴다고 삼 일 걸였서요

_ 「좋은 공부」 전문

 

국가 지원이 필요한 문해교육 기관 중 실제 지원을 받는 곳은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원을 받는다 해도 예산이 부족해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는 실정이다. 학교가 문을 닫거나 교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늦깎이 학생들은 “아직도 배울 게 많은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한탄한다. 최소한의 교육으로 뒤늦게 희망을 보게 된 삶, 문해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생들의 바람은 ‘마음껏 공부’ 하나뿐이다.

 

나의 눈, 손, 입 치료하기 위해

한글교실 입학하여 공부하니

씻은 듯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나와 같이 공부 못하여

애만 태우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용기 내시어

저와 같이 나와서 공부 하세요.

공부는 힘이 나게 합니다.

_ 「공부는 힘」 중에서

강광자 외 86명 저자

강광자 외 86명

(사)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와 한빛비즈(주)가 주최한 공모전에 서울, 광주, 부산, 성남, 안양 등 전국에 소재한 30여 개 문해교육 기관이 참여했다. 문해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도움으로 두 달 여에 걸쳐 480여 편의 시화와 산문 작품이 접수되었고, 최종 87인의 작품 89편(동일인의 두 작품 포함)이 선별되어 책으로 묶였다.

추천의 말

들어가며

 

1부 내 속을 누가 아까

 

우리 영감 _김생엽

꿈 _김정자

메모 _박옥남

공부 _이옥자

봄이 오면 좋아요 _소금연

네, 네, 가요, 가 _김점옥

배우니 좋다 _조숙자

엄마에 기도 _김귀순

춘자 여사 이만하면 출세했지 _김춘자

글이 삐뚤삐뚤 _김시자

공부 _임태기

한 자도 생각이 안 나요 _이옥순

콩국수 _김순업

걱정이 끝이 없다 _이청자

숙제는 싫어 _전영순

가족 생각 _김금섬

나의 꿈 _신현순

관광을 갔다 _이순희

좋은 공부 _차영남

(산문)잊을 수 없는 지난 날 _권양자

(산문)남편 사는 나라 _옥춘자

(산문)보낼 수 없는 편지 _김영자

 

 

2부 그 돼지는 어찌 대쓸꼬

 

새끼 돼지 _김석점

겁 안 나는 세상 _김숙자

꿈 _천청자

계약서 _김명자

사랑하는 엄마 _권영순

밥맛 _조숙자

꽃이 피였네 _김필례

늦게 이룬 내 소원 _박경자

내 인생 _김정순

사십 년 슬픈 고독 _정진임

보릿고개 _허미자

보고 싶은 어머님 _선은주

언니 마음 _서말순

내가 찍는 도장 _박말임

나도 공부하는 학생이다 _하채영

꿈의 수레바퀴 _강동자

어머니의 놋수저 _유선자

똥 이야기 _오애자

군고구마 _서선옥

달력도 못 보는 시어머니 한글도 모르는 며느리 _김운자

사과 편지 _김시자

(산문)이 자리에 오기까지 _이명선

(산문)행복의 보금자리 _김측이

(산문)당당한 발걸음 _황광순

 

 

3부 책만 펴면 졸음 오니

 

공부는 불면증 치료제 _유정애

당신에게 _백금숙

하글 배우고 십다 _장미순

다시는 방학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_김영순

등굣길 _김순엽

나에게 보내는 응원 _김정자

나의 꿈 _이금례

오랜 마취에서 풀려났어요 _송순옥

내 생일날 _정근화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 _이명례

사랑하는 우리 영감님 _최정

보고 싶은 당신에게 _한오순

내 가슴 연필과 노트만 보면 두근두근 _이정순

나의 인생길 _최경순

내 인생 처음 학교에 왔다 _정재순

소중한 남자 _나미자

둘이서 _김정애

봄 _김정숙

(산문)설마 한글을 모른다 안 하겠지요 _박춘광

(산문)공부와 함께 자라나는 나의 행복 _최경자

(산문)배나무 _허옥기

 

 

4부 내 인생에 꽃이 폈네

 

내 인생에 꽃이 폈네 _오홍자

학교 _장학선

이 행복을 누구에게 말할까? _김봉준

나도 할 수 있다 _이간난

삼국시대 _허덕순

손자는 내 공부 친구 _김정순

과일 _정숙이

할머니 동화책은 더듬더듬 _정연숙

공부는 힘 _조점순

나의 자부심 _정숙자

연극배우 순복이 _최순복

공부를 하고 부터는 _이순덕

나의 특별한 동창생 _윤영옥

강아지 _박군자

행복하네 _김금자

이제는 웃음이 나온다 _강광자

공부는 나의 꿈 _권옥자

까막눈 뜨고 _김보민

공부 _경정옥

(산문)아들에게 _문단오

(산문)나의 일기 _정태순

(산문)남편에게 _박서운

추천의 글

 

위인의 인생 궤적은 위인전으로 남겨진다. 그러나 위인도 아니고 힘도 돈도 없는데 배움마저 모자란 ‘그저 그런’ 인생들은 침묵 속에 갇히고 만다. 여기 마침내 자신의 인생을 기록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있다. 글을 몰라 드러내지 못했던 심정을 서툰 글씨로 ‘삐둘삐둘’ 쓰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침묵을 뚫고 쏟아진다. 평생의 한이 녹아내린다. 답답함이 사라진다. 한 편의 글에 한 명의 생애가 담겨 있기에 이 책에 수록된 89편의 글은 각자의 인생 기록과 다름없다. 이 책은 그분들의 위인전이자 자서전이다. 여기 ‘그저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있다.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있다. - 노명우(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 책의 모든 글자는 ‘꽃’이다. 뒤늦게 깨우쳐 터득하게 된 한 글자 한 글자는 예사 글자가 아니다. ‘마누라’가 아닌 ‘마느라’는 순진하고 아름다우며 애달프다. 읽는 내내 연필로 정성스레 눌러 쓴, 진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기쁘고도 촉촉했다. 그분들에게 글자는 그냥 글자가 아닌 꽃이고 새이며 초승달이셨으리. 내게 이처럼 아껴 읽은 글도 드물다. 꽃은 비로소 한 가지에 나란히 피어나 꽃가지로 벋어 꽃그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이상교(아동문학가)

 

어르신들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과 닮았고,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내미는 그들의 삶처럼 따스합니다. ‘책이란 우리 안의 꽁꽁 언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카프카의 말에 기대어 말한다면 이 책은 내 안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입니다. 재미있어서, 감동이어서, 가슴이 먹먹해져서 웃고 울며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래, 삶은 이래서 살아볼 만하구나!’ 용기가 났습니다. 이 책이 바로 아름다운 도끼입니다. - 이용훈(서울도서관 관장)

 

글자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삶의 커다란 귀퉁이 하나를 허물고 사는 것과 같다. 그 아픔과 설움이 한두 해도 아니고 예순, 일흔 해를 넘겼다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그러나 부끄러움 무릅쓰고 글을 배웠다.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는 일이 녹록지 않지만 새롭게 눈이 떠지는 경이로움과 기쁨이 더 컸다. 그래서 끝내 글을 읽어낼 뿐 아니라 글을 쓰는데, 세상에! 죄다 시인이다. 때론 어느 문장 하나에서 멈춰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문장에 담긴 삶의 매듭과 마디를 읽어내며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건 설움도 원망도 아닌 기쁨과 공감 그리고 화해의 눈물이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그런 눈물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점이다. 힘겨운 삶을 버텨내고 그 삶과 세상을 용서하며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분들에게 한없는 경의와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고개 숙이는데 눈물이 또 흐른다. 아, 참 고약한 책이다. - 김경집(인문학자)

 

글을 몰라 깜깜했던 평생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차곡차곡 겹겹이 쌓였던 삶을 글로 썼더니 어떤 시인도 흉내 낼 수 없는 시가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의 글에는 거추장스러움이 없습니다. 잘못 배워 가진 가식도 없습니다. 아쉬움과 고마움만이 따스하고도 가슴 시리게 전해집니다. 고통과 원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소리에 귀 기울여주세요.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의 한이 이 책으로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좋겠습니다. - 문종석(푸른어머니학교 교장)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고 익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시와 산문으로 고백해내는 것, 그것은 그 자신에게 엄청난 사건이며 기적입니다. 설움과 절망, 기쁨과 행복으로 써내려간 소중한 글들을 읽으며 삶의 목적과 문해교육이 나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고민합니다.

- 김종천(제천 솔뫼학교 교장)

꾸미지 않은 순수함으로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늦깍이 한글학교 어르신들의 마음이 담긴 시와 산문 모음집이다.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가슴이 뻥뚫릴 때도 있고 머리가 맑아지거나 마음이 꽉차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진리를 삼킬듯한 언중유골의 논리 전개가, 때로는 나의 과거와 겹쳐지며 애절한 슬픔과 위로가, 때로는 꾸미지 않은 순수함과 일상에서 보기 드문 신선함이 그렇다.

글을 쓰는데 활용되는 온갖 미사여구와 수사들 그리고 기상천외한 전개방식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소재들이 있겠지만 이것들을 모두 걷어내고도 심금을 울려주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글도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60살이 넘어 늦은 연세에 한글학교에서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치신 어르신의 글엔 한글을 차고 넘치게 사용해 온 보통사람들의 책에서 볼 수 없는 순수함과 진정성이 담겨있다.

한글을 배우고 익힌다 함은 마음이 아닌 머리가 시키는 일인 것 같은데도 이 책에 담긴 어르신들의 공부에 대한 열의와 행복은 마음에 담겨있다. 서로 다른 분들이 쓰신 글임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때로는 손자 손녀들이 동화책을 읽어달라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글을 모르는 것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함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른 집에 팔려와 기구한 삶을 이어가신 어르신이 들었던 “눈 뜬 장님”이라는 모멸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짝사랑 하던 하숙집 대학생 아들의 편지에 답장을 못해 마음을 주고 받지 못하고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 애절함도 담겨있다. 80년 가까운 인생을 사시면서 얼마나 한이 맺힌 애절함일까?하숙집

액션 영화를 좋아함에도 자막을 읽지 못해 외국 영화를 볼 수 없는 것부터 노래방에서 노래를 검색하지 못해 예약하지 못하는 일까지 일반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삶의 일부는 누군가에게 큰 시련이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한글을 몰라 이를 표현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뿐 그 안에 수십 년 쌓인 세월의 무게는 여느 일반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이제 막 배운 한글로 표현해 나가는 이 책의 시와 산문들은 빛나는 원석과도 같다.편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보람 또한 신선했다. 김영순 할머니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태산을 집어삼킬만한 배움의 강렬한 의지가 보인다. 어떻게 저런 유순한 일상의 말로도 배움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의지

공부를 하고 나서 온몸의 장기가 웃는다고 표현하신 이순덕 할머니의 시 또한 그러하다. 웃음과 장기라는 단어가 자주 엮이지 않음이 상식인 바 이 부조화스러운 두 단어가 주는 순수한 강렬함이 신선했다.이순덕

어르신들의 한글을 배우는 열의와 과정 그리고 한글을 몰라 겪었던 서러운 과거와 마음의 상처들 외에도 이 책에서 곱씹어 볼 만한 꺼리가 또 있는데 그것은 긴 세월 쌓여온 마음과 추억이다.남편에게

한글을 알고 모름과 상관없이 같은 인간으로써 저마다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며 느끼는 회환과 깨달음이 어르신들의 글에 담겨있다. 남편이나 자식 혹은 부모님들을 그리워 하는 애절함을 읽고 있노라면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왜 이렇게 느끼는 마음은 비슷할까 싶으면서도 같은 주제를 바라보고 승화시키는 자세에서는 긴 세월 살아 온 어르신들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함도 담겨있어 신비스럽다.

읽는 내내 웃음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에 복 받치기도 한다. 한글은 이제 막 배우셨지만 87분의 어르신들의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표출할 수 없어 꾹꾹 눌려 온 감정의 폭발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

나보다 갑절의 고난과 시련을 겪으신 87분의 어르신들이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내 안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느낌

이 책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남은 느낌을 이 말로 대신할까 한다. 슬프거나 힘든 녹록치 않은 인생에 찌들어버린 내 마음을 한 번 쯤 깨끗하게 정화시켜보는 것은 어떨지 이 책을 선뜻 내어주신 어르신들의 마음에 감사를 표하며 리뷰를 줄인다.


#강광자외86명 #보고시픈당신에게 #보고_시픈_당신에게 


"이 책의 모든 글자는 '꽃'이다. 뒤늦게 깨우쳐 터득하게 된 한 글자 한 글자는 예사 글자가 아니다. '마누라'가 아닌 '마느라'는 순진하고 애달프다." _이상교, 아동문학가 (추천의 글)

월요일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며 책 읽다가 대성통곡하던 사람, 나.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늦게 배우신 한글임에도 굉장한 글솜씨를 뽐내시는 어르신들.

(사실은 뽐나는 것은 글솜씨가 아니라 마음씨이고 배움의 기쁨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치 출처: 한빛비즈 홈페이지]

"글을 배우고 편지를 씁니다/ 당신 참 고맙습니다." _133쪽 (백금숙, <당신에게>)

 

'참' 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글자인지 이 글을 읽기 전엔 미처 몰랐다.

몇 번이고 혀 끝에서 되뇌어 본다- 당신 참 고맙습니다. 당신 참 고맙습니다.

#백금숙 #당신에게

 

 

"돌아서서 눈물을 흘려야 했고 글자를 몰라서 그런다고 말 할 수도 없고 그는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그렇게 끝이 났지만 그사람 이름 난 지금도 기억을 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난다." _60쪽 (권양자, <잊을 수 없는 지난날>

 

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으셔서, 그 때 그 편지에 답장 한 번 해 줄 수가 없으셔서 매일매일이 힘들었다는 이 이야기를 글자들로 남기고 싶으셔서- 그렇게 글을 배우셨나보다.

그 청년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나고, 그 설렘이 잊히지 않고, 그 마음이 자꾸만 떠올라서.

...글을 배워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답장을 해 주고 싶어서.

#권양자 #잊을수없는지난날 #잊을_수_없는_지난날

 

진짜로, 쓰고 싶은 얘기들이 이렇게나 많으셨는데 이 긴긴 세월 어찌 참고 사셨을꼬 싶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한글을 읽고 쓰는 기쁨, 세월에의 회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의 그리움, 며늘이에의 사과, 젋은 때의 추억...

모든 것들이 삐뚤빼뚤하게 그렇지만 정직하고 곧고 맑게 적여있었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책의 장수가 부족한 지경이다. 

여든 여섯 분의 어르신들의 일기장을, 시집을, 편지를 함께 읽고는 그 전부터 글자를 쓰던 나는 어떻게 해야 덜 부끄러울 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어떤 글자들을 어디에 남겨야 할 지 생각한다.

 

#시 #수필 #산문 #한글 #배움 #늦깎이 #한글학교 #늦깎이한글학교 #어르신 #글자 #책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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